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기치 못한 일들은 시시각각 우리를 찾아옵니다. 어느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반갑지 않은 손님일 겁니다.
예고 없이 방문하는 손님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러한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도대체 해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 손 놓고 구경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저 또한 이러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다 보니 무덤덤 해질 수도 있지만 말이죠. 저는 그럴 때마다 김포점집 용화암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미신이라고 핀잔을 주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는 이곳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고 마음의 편안함도 느꼈습니다.
마음 답답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나면 저도 모르게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는 느낌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으나 마음만은 아주 홀가분해진답니다.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일이나 고민이 있다면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참으려고만 하면 속병만 깊어집니다.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다시 기운 내어 나아가야만 합니다.
김포점집은 점 잘보기로 입소문이 많이 난 곳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상담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는 시간에 저와 인연이 닿을 거라고는 이때만 해도 상상을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으며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혼자보다 둘이 낫다는 말도 있듯이 모든 걸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의논할 사람 전혀 없는 저에게는 너무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은 바로 재취업 때문이었습니다. 그 막막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는것 같습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는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경험은 안 하는 것이 좋겠지요?
제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도 막막했던 지난날의 이야기이지만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해드립니다.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생활하는 저는 제가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 생활하기가 무척 힘들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막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둘째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저의 건강에 이상이 왔고 더 이상 직장을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3번 투석을 받으며 그동안 조금씩 저축해 놓았던 돈이 통장에서 텅장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희망조차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 탓으로 저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하늘이 도왔는지 저의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지만 일여 년 동안 수입이 없었던 저의 통장은 잔고가 0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건강만 있으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습니다. 일 년 동안 취업을 할 수 없었던 저는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있었고 제가 설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느 곳은 경력이 너무 많아 안되고 경력을 낮추어 지원하면 아이들이 어려서 어렵다 하고 어떤 곳은 거리가 멀어서 안되고 또 제 나이가 많아서 안되고 이유는 정말 다양했습니다.
이력서가 100통 이상은 휴지통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저 막막한 마음 뿐이었고 이제부터 무엇을 어떡해야 좋을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한숨만 나오고 무능한 제 자신이 밉고 싫었습니다.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한숨만 늘어가는 저에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김포점집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당시 저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게 저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지요.
또다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하고 미역국 먹기를 반복하고 있었지요. 코로나가 시작되고 기간이 길어지니 그나마 면접을 볼 수 있는 곳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시기라 식당 같은 곳의 취업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차츰 제 자신을 포기해 버리고 싶어졌고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는 날이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무능한 엄마라도 아이들에게는 제가 세상의 전부일 텐데 자꾸 나약한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조그만 회사의 경리로 취업을 하였고 저는 사력을 다하여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경영난을 이유로 회사는 폐업을 하게 되었고 저는 또다시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반복되는 일상이 점점 길어지고 이대로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창피하여 오롯이 저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삶의 희망이란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을 조금 줄여서 생활비라도 마련할 생각으로 이사를 계획하였고 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안방 서랍을 정리하고 있는데 예전 지인으로부터 받은 점집 명함이 나오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명함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예약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명함이 그날따라 왜 그리 반가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었습니다.
예약 날짜가 다가오고 고양시로 향하는 제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김포점집은 생각보다 한산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의 분위기가 낯설어 어색하기도 했고 분위기가 무거워 보여 주눅이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흔들어 놓았고 여기 와서 앉아있는 제 자신이 너무 싫고 미웠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선생님이 모습을 보이셨고 제 앞에 자리하고 앉으셨습니다.
저를 보신 선생님은 한숨을 쉬시더니 많이 힘들었겠다며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눈을 마주치던 순간! 저도 모르게 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던 저에게 잠시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시는 선생님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동안의 무거웠던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이렇게 마음 편하게 울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속이 후련해질 정도로 목놓아 울고 나서야 그간의 일을 차분히 늘어놓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신 김포점집 선생님은 그간의 일을 정리해서 말씀하시며 순간순간 놓치며 지나간 잘못된 행동이나 순간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급한 마음에 놓치고 살았던 일들이 하나씩 생각나며 그동안 돈만 쫓아 다니며 아무 곳이나 취업만 되면 된다는 아닐 한 생각에 급급했던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직장을 구했고 좀 더 앞날을 생각하는 지혜가 모자랐던 제 모습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이력서만 쓸 줄 알았지 그 직업을 위해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는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제 모습이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는 그 순간 면접관의 눈에 보였던 것은 아닌지 그동안 남 탓으로 돌렸던 모든 순간이 결국은 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너무도 민망했습니다. 정말 뼈를 때리는 조언이셨어요.
김포점집에서의 경험은 저에게는 도움을 넘어 교훈이 되었고 제가 다시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조그마한 식당에서 일을 하며 밤에 공부를 하여 취득한 자격증으로 취업에 성공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적금도 조금씩 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무언가 고민거리가 생기고 혼자 결정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일상생활로 바쁜 사람들을 위해 전화 상담도 해주시니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찾아가기가 어려워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포점집의 선생님은 한국무속신문사가 선정한 모범무속인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어려운 일들 혼자서는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십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세상을 살면서 커다란 백이 생긴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가슴 답답하고 헤쳐나갈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면 뿌리치지 않으시고 도움의 손을 내어 주십니다. 이제 혼자서 속앓이 하지 마시고 꼭 한번 방문하시어 마음의 편안함을 찾으시는 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