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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점집,운정점집 나의 고난의 길~~~~

용화암 2024. 5. 2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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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점집,운정점집 나의 고난의 길~~~~

 

 


어느 날이던 한순간도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한때는 이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내가 참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막막했지만 누구와 얘기할 수도 
없었고 제 이야길 들어주는 사람도
주위에는 없었습니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부터
쏟아질 것 같은 그때의 심정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답답함에 잠도 이룰 수 없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인 건네준 명함 한 장
바로 파주점집,운정점집 용화암 
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까요?
평소 같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명함이 그날따라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전화기를 들어
예약을 하고 한달음에 달려가 
그곳에 앉아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면서도 괜한 짓을 한건 아닌지
잠시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왠지 모를 편안함에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었습니다
초조함에 기다리는 시간은 5분이 
1년의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에 위치한

파주점집,운정점집은 한국무속 신문사가
선정한 모범 무속인으로 신점을 
보시는 곳이었습니다
처음 방문이라 무서운 마음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안도감 또한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운 한복의 선생님이
제 앞에 자리하고 앉으셨고
저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안도감에 쉼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해지면서 긴 한숨과 함께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길었던 이야기를 선생님은 차분하게 
끝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습니다


저는 중학교 동창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3개월 만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힘들게 혼자 살아오던 처지라
예단이나 혼수 할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였고 각자의 살림살이를
합하여 첫 시작을 하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하게 된 결혼이라
바로 임신을 하였고 행복은 오래
지속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흔한 고부 갈등도 없었고 
형제 없는 집에서 자란 저는 남편이
형제가 많은 것이 좋았습니다
이제 제게도 언니들과 동생이 생기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습니다


큰아이를 출산하고 연년생으로 
둘째를 임신했을즈음 남편은 
사업을 해보겠다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의 행복을 잃기 싫어
반대를 했고 남편은 무리하게 
사업을 준비하여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저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 기다림이 
많이 길어질 거란 생각은 못 했습니다
사업 확장을 하겠다며 중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중극을 오가는 일이 
잦아지고 아예 중국으로 이주를
하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저는 또 한번 반대를 했고 말다툼은
오랜 가출로 이어졌습니다


여기까지 들으신

파주점집,운정점집선생님은
긴 한숨을 쉬셨습니다
제 이야기가 벌써부터 듣기 
힘드셨나 봅니다 
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신 선생님은
같이 한숨을 내쉬던 저에게 다시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은 중국을 오가며 집에는 가끔
얼굴을 비추었고 둘째를 임신 중이던 
저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기세나 가스비가 밀려서 차단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어느 날은 
겨울에 가스가 차단되어 저와 
큰아이가 독감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지인으로부터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었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중국으로 
가보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아주버님이 사고 수습을 위해
중국으로 가셨습니다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이 멈춰 버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소식은
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사고는 혼자 난 게 아니라 부인과 
아들이 동승하고 있었고 
일가족이 즉사했다는 거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저희가 아니었나 봅니다

 

 

파주점집,운정점집에서 나를 다 내려놓고
속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난 기억을 
꺼낸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주책없이 계속 흐르는 눈물은 
어찌 감출 도리가 없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저를 보며 선생님도
같이 힘들어하시는 듯했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문제는 남편의 사고 
다음부터였습니다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하며
저 모르게 집과 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이후부터 사채업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손에는 이미 소유주가 바뀐 
등기부등본이 들려 있었습니다

 


집안에 갇혀 숨어있던 그 숨 막히는
시간들은 지금도 무서워서 
생각하기조차 싫었습니다
돌 지난 아이가 있는 임산부인 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살 방법을 마련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
당장 아이와 머물 곳을 찾는 것도
어려웠고 살갑게 굴던 남편의 
형제들도 모두 등을 돌려 버렸습니다
쥐도 도망갈 곳을 보고  쫓는다고 하는데
폭풍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 시련에 
정신조차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돈 될만한 
것을 모두 처분하여 약간의 돈을 
만들었으나 워낙 값나가는 물건이
없어 집을 얻을 만큼의 돈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시름에 빠진 저에게 

파주점집,운정점집은 저에게 지푸라기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이곳에 오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다른 길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모두 들으신 선생님은
고생했다며 저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해결책은 없을지라도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나니 체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점사를 보시던 선생님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힘든 일은 거의 
다 지나갔으니 조금만 더 견디라고 
하셨습니다
도움을 줄 사람도 나타날 거라고 
말씀하시며 자존심은 버리고 
도움의 손길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믿음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저를 도와줄 사람은 
안 보였으니까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답답했던 마음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집안 물건을 정리하고 
간단한 짐을 챙겨 집에서 나왔습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 아이와 
찜질방에 짐을 풀고 전화기를 켜니
부재중 통화가 100통이 넘게 
와있었습니다
모두 사채업자들이었고 메시지는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들 
뿐이었습니다

번호부터 바꿔 버리고 친한 지인 
몇 명에게만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그중 남편을 소개해 준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천천히 써도 된다며 얼마의 돈을
이자도 없이 빌려주었습니다

 

 

파주점집,운정점집 선생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작은 월세집을
마련하고 아이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저의 외할머니와 연락이 되어
이곳으로 오셔서 큰아이를 
봐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의 실마리가 풀리니 다른 일들도 
하나씩 정리가 되어 갔습니다

아이의 상속포기 신청까지 마친 저는
앞으로 살아갈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신 중인 상태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결혼 전 일하던 출판사에 
연락이 되어 다시 근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가지씩 자리를 잡아가고
둘재도 무사히 출산을 한 지금
비록 월세 집이지만 차곡차곡 돈을 
모으며 전셋집으로 갈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이들도 잔병치레 없이 잘 지내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도 저를 대신해 힘든 
육아를 맡아주시니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점사는 정확하게 맞았고
조금이라도 의심을 했던 저의 
어리석음을 후회했습니다
저에게는 지푸라기가 아닌 
동아줄 같은 존재였습니다


넉넉하진 않으나 편안한 마음을 
되찾은 저는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파주점집,운정점집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힘들었을 때 저의 동아줄이 되어준 
선생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결정하기 힘든
일이 있거나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전화로 상담을 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해결책을 내어 주십니다
제 불행했던 결혼생활은 의미 없이
끝이나 버렸지만 이때의 교훈을 
발판 삼아 쓰러지지 않는 엄마로 
거듭나도 있는 중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