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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점집용화암 앞이 보이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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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점집용화암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앞이 캄캄하다'라는 말이 너무나
공감되는 나날이었어요.
하는 일도 안 돼, 가정사도 문제야,
안부터 밖까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사람이 우울해지더라고요.

나름대로 힘들어도 건실하게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노력이 헛것이 된 순간
사람은 참 쉽게 무너지더랍니다.

그런 저를 보며 아는 형이
안타까웠는지 용하다는
시흥점집용화암을 소개해줬어요.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으나 워낙 
권유하는 바람에 다녀오게 됐어요.



당일,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운전해서 가고 있었는데
순간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해맑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도,
가족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기억이
아주 멀게만 느껴져요.

고단하고 힘든 일상생활에
즐겁다는 게, 행복하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제가 마냥 승승장구를
할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었고, 집도 풍족한 편에
속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사람 인생 어떻게 될 줄
모른다고, 갑자기 아버지 회사가
기울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새에
부도를 맞게 되었어요.

그때가 고2 시절이었어요.
한창 공부에 집중하여 맹목적이던
제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목표로 했던 대학도 포기하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저 포함 가족 모두가
생전 해보지도 않던 고생을 하며
집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어요.
긴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족이 되었는데요.

문제는 아버지였어요.
고운 손을 가졌던 엄마가
식당에서 설거지하며 모은 돈,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불렸던 제가
공장에서 아락바락 모았던 돈,
그 돈을 갖고 주식을 하신 거예요.

원래 주식을 하셨던 분이라 금방 
이득을 보실 거로 예상하셨나 봐요.
하지만 급격한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적 경기 침체가 심각해졌고,
그렇게 저희가 피땀 흘려 모았던
저축도 어이없게 사라져 버렸죠.



심지어 고등학교 졸업 후 내내
다니고 있던 회사도 위기에 닥쳐
하나둘 가족과 같았던 직원들을
내치기 시작했어요.
그 속에는 저도 포함됐었고요.

열심히 일구어놓았던 것들이
자고 일어나니 모두 없어졌어요.
그때의 상실감과 회의감은
차마 말로 이룰 수가 없었죠.

낙이라고는 저축과 일이 다였던
사람이라 그게 사라지니
삶의 목표가 사라진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의지할 거라곤 술과
담배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시흥점집용화암의 선생님께서는
그런 걸 한눈에 알아보시더라고요.
이제까지 얼마나 발버둥을 치며
살았는지, 어린 나이에 왜 이렇게
삶에 대한 회의감이 큰 것인지
바로 뚫어보듯 알아주셨어요.

한 번도 점사나 사주 등을
봐볼 생각도, 여유도 없었기에
저는 충격적이었을 뿐이었어요.
원래 이런 건가 싶어서 괜한
두려움도 생겼었죠.

하지만 선생님께서 다정하시고
상냥하셔서 금방 긴장과 
경계를 풀 수 있었어요.
원래 알고 지냈던 친척처럼
깊은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참 감사했어요.
부모님께는 걱정 끼치지 않으려
항상 괜찮다며 웃었고,
친구들은 차마 만날 시간이
잘 나지 않아 소원해졌었거든요.

누군가가 이렇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며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얼마 만인가 싶었어요.

마음이 힘들 땐 그저 토로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더랍니다.
차근차근 내 삶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그러면서 앞으로 저는, 우리 가족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어요.
겨우 모아 놓은 돈도 반조차
남지 않은 상황이고,
저도 일자리를 잃었으니까요.

그리고 시흥점집용화암에서
처음으로 사실 공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었어요.
이제까지는 이런 투정과 같은
속내를 터놓을 사람이 없었거든요.

저도 남들처럼 일찍 퇴근해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싶고,
주말에는 쉬는 삶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었죠.



처음에는 냉정하게 제게 처한
상황을 설명했는데 어느 순간
어린 애처럼 제 희망 사항을
주절주절 읊고 있더라고요.

정신을 차리고 죄송하다고도
말씀드렸는데 그런 거 괘념치 말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라고 해주셔서
또 한 번 감사했었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 없는 제게
조금만 더 힘내라고 하시더랍니다.
꽃 피는 봄이 조만간 찾아올 테니
희망을 잃지 말고,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면서요.



그 말을 듣고 순간 뜨끔했어요.
사실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도
한두 번 했던 게 아니었거든요.
그것까지 알아봐 주신 건지
계속 살아가라고, 그렇게
말씀을 해 주셨어요.

저는 이렇게 지기에는 아쉬운
꽃이라고 하시더랍니다.
총명하고 잘 될 사람이니
굳건하게 저만을 믿고 살아가면
분명 만개할 날이 올 거라고요.

적성에 맞는 좋은 자리의 소식이
곧 들릴 터이니 조금만 참고
버티라고 하셨어요.

그러시면서 조만간 금전과 관계된
동업이나 투자 이야기가
주변에서 나올 수 있는데
무조건 거절하라고 하셨어요.



주변에 지인도 워낙 없는 데다가
딱히 금전 거래를 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알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몇 번이고 당부하셔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어요.
얼마 후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께서 이야기를 꺼내셨거든요.

투자 목적으로 금전이 필요하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길이니 이제껏
모아두었던 돈을 달라고 하셨어요.
이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부분이구나 싶어 황당하기도 했죠.

진정하고 대화하고자 하는 제게
무턱대고 돈을 빌려 달라며 
무작정 밀어붙이기만 하셨어요.
뭔가에 씐 것 같은 모습에
황당한 기분만 가득했었어요.



아버지께서 화도 내시고 애원도
하셨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절대 듣지 않았어요.
그리고 얼마 후 그 투자 자체가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셨죠.

그때는 정말 정신이 드셨는지
저에게 여러 번 미안하다고,
아빠도 정신 차리겠다며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셨어요.

가족에게는 마냥 약한 저인지라
만약 시흥점집용화암에 가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의 청을
들어드렸을 것 같아요.
그제야 추천해준 형이 정말
고맙게 느껴지더라고요.



놀라운 일은 또 일어났어요.
같은 회사에 다니다가 권고사직 
시기에 함께 퇴사했던 부장님께서
뜬금없이 연락을 주신 거예요.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반갑게 인사를 드렸는데요.

퇴직 후 설비 제작 회사를
하나 만드셨다고 해요.
아직 작기는 하나 믿을 수 있는
직원들을 모아 꾸준히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게 입사를 권하셨어요.
그것도 회사에서 일했던 모습을
좋게 봐주신 덕에 주임 자리를
선뜻 내주시면서 말이에요.
당장 일할 곳이 없어 헤매던 차라
바로 수락을 했었어요.

그리고 어안이 벙벙했었죠.
제가 부장님께 그렇게 좋은
이미지로 남았다는 것도 신기했고,
선생님의 그 말씀이 결국
들어맞았다는 것도 소름이었어요.



공장처럼 많이 벌 수는 없지만,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고
직책까지 달고 스타트라인에
서게 되어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어요.

주간, 야간으로 바뀌던 생활이
이제는 해가 뜰 때 일하고 
질 때는 자는 생활로 바뀌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점차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뀌더랍니다.

근무 시간 자체도 짧아져서
소원했던 친구들과도 연락하고,
가끔은 술 한잔 기울이는
여유도 생겨나게 됐어요.

만약 형이 일산점집용화암을
소개해주지 않았더라면,
강제로 예약을 잡아 다녀오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는
어떤 삶을 살지, 살고는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도 사기 사건 이후로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성실하게
회사에 다니고 계세요.
예전처럼 멋지고 화려한 일상은
아니지만, 가족끼리 오붓하게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내내
울고 계시지, 저랑 아버지도
술만 퍼마시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상상도 가지 않아요.

선생님께서 충고해주시고
마음을 다잡아 주신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아서
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랍니다.

누군가에게도 터놓기 힘든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주어진 삶이
막막하여 앞이 캄캄하시다면
시흥점집용화암을 다녀와 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시흥점집용화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7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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