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용한점집 응어리가 풀려요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떻게 극복을 하시나요?
저는 항상 혼자서 견디거나
술, 잠으로 도피를 하곤 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좀 더 건강한,
생산적인 해결 방법이 생겼답니다.
요즘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일산용한점집에 찾아가서
제 속 마음을 낱낱이 고하고
위로, 조언을 받으면서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깨끗한 몸과 마음가짐을
만들고 오는게 습관이 되었죠.
원래는 모든 고민이나 고난은
혼자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어요.
확실히 언제든 기댈 곳이 있으니
어떤 고난이 찾아오든
두려운 마음이 덜 들더라고요.
여러분들도 힘든 일들이
밀물처럼 손 쓸 새도 없이
밀려올 때면
혼자서 앓지 마시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얼마나 살 만한지
내 곁에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을 거예요.
저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제가 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된 이유는
남편의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드라마, 영화에서는
뭐 하도 많이 다뤄지는 소재이고
사실 심심치 않게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런 비극이 나에게로
찾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저희 부부는 꽤나
사이가 좋았던 편입니다.
당연히 신혼 때처럼
살갑고 죽고 못 사는 정도로
닭살 부부는 아니었지만,
나름 성실하게 생계를 꾸리며
우리를 닮은 예쁜 아이도
셋이나 낳아서 기르고 있었죠.
남편은 꽤나 성실하였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리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항상 일을 마치고 나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꼭 가지고,
간혹 제가 늦는 날에는
저를 위해서 음식도 준비했죠.
묵묵하고 한결 같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 년 전에
그런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아채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핸드폰에
처음 보는 어플리케이션이
깔려 있어서
우연히 열어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꽤나 어린 여자와
선을 넘는 대화들을
지속적으로 주고 받았단 걸
알게 되었지요.
1, 2년 동안 주고 받은
대화들을 쭉쭉 읽어보면서
제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저를 더욱 더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연락을 주고 받는 또 다른
여자들도 있더라고요.
자주 만남을 가지거나 뭔가
불순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 대화들은
저를 기만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이라면서
평소 저에게도 보내지 않던
귀여운 이모티콘들,
한 눈에 보아도 애정과
관심이 듬뿍 섞인 말투.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거실에서 아이들과
웃으면서 놀아주고 있는
남편이 그렇게
낯설게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저는 그 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남편을 추궁했고,
남편은 모든걸 인정했지만
깊은 사이는 아니라면서
그냥 넘어 가길 요구했습니다.
몇 주간 거리를 두면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무래도
아직 어린 아이들이
눈에 밟히게 되더라고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답도 모르겠고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고,
평상시와 같이 저를 대하는
남편을 보면
자꾸 울컥울컥 울분들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쳤죠.
저는 간절하게
도움을 청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친구들에겐
사실을 말할 자신이
저에게는 없었던 상태였지요.
그래서 일산용한점집을
검색해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런 곳은
처음 가보았던 것입니다.
도움이 되든 안되든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외부적인 방향성을
누군가가 잡아줄 수 있길
간절히 바랐기에
찾아가게 된 것이었지요.
제가 찾아갔던 곳은
용화암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정발산동 쪽에 위치해있는
일산용한점집이었지요.
전화를 해서 간단하게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예약을 하고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분위기가
무겁거나 낯설지는
않는 곳이더라고요.
잔뜩 긴장을 하고 간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습니다.
고요하고 깔끔한
분위기에서 이곳의 선생님을
처음 마주했습니다.
온 몸이 얼어붙고 말문이
턱 막혀서 2분, 3분 정도는
인사 말고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 했었죠.
경험이 많으신 분 답게
그런 저를 캐치하시고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유도를
해 나가 주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하면서
저의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죠.
적응이 되자
무너진 댐에서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나오듯
제 안의 수많은 감정들과
고민들이 나왔습니다.
일산용한점집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선생님 때문이었는지,
저는 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깊은 속 마음까지도
전부 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에 속도가 붙어서 스스로
컨트롤도 안 되더라고요.
선생님은 끊지 않고
인내심 있게 저의 모든 말을
끝까지 들어주셨습니다.
마침내 길고 긴
저의 두서 없는 한탄이
끝났을 때
제 마음이 얼마나 시원 했는지.
사람들이 힘들 때에
왜 이곳을 찾게 되는건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명확한 선택을
하기 위한 것만이 목적이
아닌 것 같았지요.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편안한 이에게
나의 가장 밑바닥 감정까지
시원하게 내보이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그간 힘들었던 저 스스로를
너무 크게 위로해주었습니다.
선생님 또한
엄청난 리액션을 해주지는
않으셨지만 중간중간
간단하고 명료하게 들어오는
진한 위로의 말,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눈빛을 보내주시면서
저를 조용히 위로해 주셨지요.
모든 말이 끝나고 난 뒤
일산용한점집의
선생님께서는 제가 해야할
선택에 대해서
깊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판을 깔아 주셨습니다.
꼼꼼하게 신점을 봐주시고
저의 사주를 풀어 보시면서
제 운과 액운, 미래와
과거 그리고 현재를 상세히
체크를 해 주셨지요.
그리고 이런 명확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막연하게 옳은 길,
바른 길만을 인도하는 그런
어영부영한 대화가 아니라
진심으로 제가 조금이나마
덜 힘들 수 있는 길을
찾아 주시려고 노력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더라고요.
생각보다도 더 명확하게
다양한 선택의 길들을
저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곳에 오면
이렇게 해야만 한다.
저렇게 해야만 한다,
강압적인 식의 해결책들만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상상 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지요.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너무나도 복합적인
요소들의 집합체이기에
우리에게는 항상
다양한 종류의 선택지들이
놓여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일은
그 중 가장 현명한 선택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덧붙이기도 하셨지요.
만약 가장 현 선택지가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
그래서 조금 위험하고 두려운
방법을 선택하게 될 때
최대한 시행착오 없이 그곳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저 또한 선생님이
해주시는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난 뒤에
마음이 가는 선택지를
하나 고를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없지만,
이 길을 가게 될 시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
준비를 해야할 것들을
꼼꼼히 일산용한점집에서
들을 수가 있었지요.
무력하고 무력했던
삶에 다시금 용기와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감정들이
피어 오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걸어 나오며
바로 행동했습니다.
억만 년 같은 몇 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모든 것들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슬픔을 불러 오지 않고
용기를 불러 올 수 있게 됐죠.
많은 것이 얽혀 있었던
남편과의 관계도
칼 같이 끊어 내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요즘에는 내내
저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 이 과정에서
다시금 마음이 흔들리거나
막막하게 느껴질 때는
일산용한점집을 찾곤 합니다.
마음도 후련하고,
제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선택지들을 진중하게
고려해볼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도움을 받고 있지요.
앞으로도 인생의 크고 작은
불운들이 생길 때마다
이곳에 찾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가족 다음으로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친우를 만나게 된 것 같아
참 마음이 편하네요.
여러분들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보세요.
단순히 점만 봐주시지 않습니다.
상처 받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희망을 불어 넣어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