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웃님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시죠? 제가 예전에 너무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던 이야기를 해드릴까 하는데요. 그 시절엔 코로나로 인해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더 힘들었어요.
요즘 다시 코로나가 심해지니 그때 힘든 일들이 많았는데 다시 생각이 나게 되어 오늘은 시원섭섭하게 한 번 털어놓아 볼까 합니다.
제 이야기가 너무 길어도 한 번 그냥 훑어서 읽어보시고 저에게 작은 희망과 힘을 같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작년에 김포점집으로 유명한 곳을 다녀왔어요. 저는 점집 이런데 믿지도 않고 가본 적도 없이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작년에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몰라서 왜 사람들이 이런 힘들 때에는 점집에 손을 내밀어 도움을 얻고자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저 그랬었고요. 그럼 이제부터 왜 저 같은 사람이 점집에 방문하게 되었는지 하나씩 썰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사실 제가 여러분은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작년에 새롭게 식당을 개업했어요. 10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과 제가 받을 수 있는 모든 한도의 은행 대출, 신용 대출을 다 당겨서 새롭게 고깃집을 개업했어요.
제가 10년 동안 다녔던 회사는 나름 이름 들으면 다 알법한 대기업이에요. 저도 학생 때부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고 이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면서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왔어요.
입사하기까지는 저의 운이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열심히 노력을 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따라주었고 그로 인해 열심히 공부하여 한국에서는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대학교에 들어가서 제 딴에는 인생의 첫 성공이라 여기며 또 열심히 살았죠.
그리고 대학생는 대외활동도 열심히 하고 인맥관리 면 인맥관리, 성적관리며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교환학생 등 제가 인생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도전해 왔고 그 도전에서 매번 승리 아닌 승리로 저는 자신만만하며 살아왔어요.
대학시절도 평탄하고 즐겁게 보내어 이성친구도 사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 인생이 즐겁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살아왔다면 김포점집을 찾아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제 인생의 불행은 제 생각에는 아니 제 지인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이 이름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서 부터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제가 오고 싶었던 이 회사에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왔고 운이 좋게 한 번에 취업에 성공하여 부모님도 지인들도 저도 모두가 좋아하며 합격한 순간을 즐기고 행복해했어요.
하지만 연수가 끝나고 입사하게 되면서부터 원래 입사하기로 되어있었던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로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내가 입사하기로 한 부서가'아닌 다른 부서로 입사가 된 것인지 이해가 가지가 않아 인사과에도 항의하고 했지만 그 소리가 아마도 지금의 제 상사에게 들어간 것 같아요... 그때부터 아마도 제 불행의 씨앗이 꽃 피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그 부서에서 회사 초년 생활을 시작해야 했어요. 사실 그 부서는 제가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던 곳이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막 지내게 됐었죠.
사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김포점집에서 상담 드릴 때 이렇게 말씀도 안 드렸는데 과거는 대충 다 맞추시더라고요.
그래서 티가 났는지 상사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채로 저는 언젠가 제가 원한 부서로 배정받겠거니 하고 회사를 막 다니게 되었어요.
여태껏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상하게 인간관계도 틀어지고 제가 원하는 대로 안되니까 제 성향이 싹 바뀌더라고요. 사실 왜 그런지 저도 이해가 안 갔지만 이전처럼 안되더라고요.
이 시기를 김포점집에서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 시점이었다 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사실 과거는 엔간한 점집에서는 잘 맞춘다고 해서 별 신뢰도 없이 상담을 계속 진행했는데요.
저 상태로 회사 생활을 10년 가까이 지속하게 됐어요. 이상하죠? 그렇게 열심히 도전하며 살아온 나였는데 저도 왜 그런지 회사 생활은 잘 못하겠더라고요.
10년 가까이 지내면서 회사 내의 인간관계도 다 틀어지고 기존의 사람들과는 열심히 만나고 유지했지만 여러분들 아시겠지만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니 그것 역시도 어렵더라고요.
저도 그 사이에 몇 번의 연애와 헤어짐이 있었지만 결혼까지 이어질 인연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연애 역시도 대학교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되는 매일 추억 팔이만 계속하는 나날들이 지속되었어요.
그러다 매일 과거만 추억하는 내가 싫어지고 주위의 사람들도 멀어지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보아하니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었죠. 맞아요. 회사 탓으로 돌린 것 같아요. 저는 회사에 입사하면서 다 잘못됐다고 생각되었어요.
인간관계도 다 뒤틀리고 적성도 안 맞고 어떻게 10년 가까이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대충 살아지는 대로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큰 마음먹고 퇴사를 결심하고 고깃집을 개업하게 된 것이었어요. 이상하게 퇴사를 마음먹기 전까지는 회사를 그래도 다녀야지 밥벌이는 있어야지 했는데 마음먹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물 흐르듯 평탄하게 사직서를 쓰고 쇗뿔도 단김에 빼라고 대출을 어마 무시하게 받아서 개업을 했습니다만.. 다들 아시죠? 작년에 코로나 터진 거. 네. 전 제대로 망했습니다. 정말 죽고 싶더라고요. 이자는 눈덩이만큼 불어나고 괜히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이렇게 됐나 싶어서 눈물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그래도 친구가 유명한 부천점집에 한 번 가보자고 가서 뭐라도 해보자 해서 찾아왔죠.
처음엔 안 간다 안 간다 했지만 결국 친구 손에 이끌려 왔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용화암이라는 곳은 예약하기도 쉽지 않아서 친구가 저 몰래 미리 예약해놨다는 사실요.
처음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께서 제 얼굴을 보시더니 정말 근심 걱정이 많아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뭐 그거야 그냥 지나가는 행인도 말할 수 있으니까 크게 의미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하나씩 던지시는 게 제가 굳이 이렇게 구구절절 말씀 안 드려도 대충 다 맞추시더라고요. 한두 번은 뭐 그냥 때려 맞추나 보다 했는데 몇 번씩 맞추시니까 어느샌가 집중하며 제가 먼저 상담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그 순간에는 인생의 귀인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잘나가던 시절 (제 생각에) 저의 불우한 시절 (지금) 선생님께서는 인생의 롤러코스터가 제 사주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제 사주에도 큰 빛이 보인다고 하셨고 혹시 좀 더 도움을 받고 싶으면 도움도 줄 수 있다고도 하셨지만 강요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시의 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것 같았네요.
김포점집에서 상담했던 그 순간을 선생님께서도 기억하시는데 제 눈빛이 바로 당장이라도 뛰어들 사람 같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든 저 사람 붙잡아줘야겠다 싶어서 사실 안 좋은 소리도 할 수 있었는데 많이 참으셨다고 하시네요.
여하튼 저는 그때 도움을 받았고 신기하게 제가 오픈했던 고깃집에 조금씩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시기도 코로나도 조금씩 나아졌었고요.
그리고 배달을 통해 저도 조금씩의 수입이 생기고 안정적으로 되는듯했습니다.
미혼이었던 저는 여자친구도 없이 몇 년 동안 솔로로 지내와서 연애하는 법도 잊었었죠.
선생님과 상담 당시에 신점으로 곧 결혼할 여자가 보인다고 해주셨는데 반신반의하면서 저도 모르게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점점 가게에 단골손님이 생기면서 단골 중 어여쁜 여성분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비스도 드리고 저의 안부도 궁금해 주시고 저도 그 손님이 언제 오나 궁금해지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지금은 다음 달에 결혼할 제 여자친구가 되었습니다. 약간은 늦은 나이에 만났지만 그래서 더 행복한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다녀왔던 김포점집은 지금은 해가 바뀔 때 가서 신점을 보거나 고민할 일이 생기면 방문하여 선생님의 의견을 여쭙거나 하여 도움을 받곤 한답니다.
우연찮게 맞았던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제 마음의 평온을 찾고 결론적으로는 제 고깃집도 잘 되고 있고 어여쁜 와이프도 생기게 되었으니 지금은 여러모로 너무 만족합니다. 여러분도 고민이 생기실 때 방문하셔서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